제주 해녀 문화와 충청 수산제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비교
지역이 선택한 보존 방식은 전통의 생명력을 좌우합니다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문화 자산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의 문화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지역에 뿌리내린 전통 중에서도 제주 해녀 문화와 충청 지역의 수산제는 해양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지역민들의 생활 방식, 신앙, 생업 구조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독특한 무형문화재입니다. 이 두 문화유산은 각각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 해녀 문화와, 수산물의 풍어를 기원하며 바다와 공존하는 충청 수산제로 대표되며, 바다를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인의 전통 해양 문화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같은 해양 문화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택한 보존의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제주는 공동체 기반의 생업 지속 중심 보존 전략을 택한 반면, 충청권의 수산제는 의례적 재현과 전시 중심의 보존 방식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러한 보존 방식의 차이는 해당 문화유산이 얼마나 ‘살아있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좌우하며,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에도 깊은 영향을 줍니다. 본 글에서는 두 무형문화재의 보존 방식과 운영 철학을 비교하고, 각각의 장단점이 오늘날 문화유산 정책에 시사하는 바를 고찰해보겠습니다.
제주 해녀 문화: 생업과 공동체 중심의 살아있는 문화유산
제주 해녀 문화는 수백 년 동안 제주 여성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며, 바다에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온 독특한 생활 문화입니다. 해녀들은 물질(해산물 채취)을 생업으로 삼는 동시에, 해녀 공동체 안에서 엄격한 질서와 협업 구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시풍속, 기원 의례, 해녀 노래, 공동작업 등 다양한 문화 요소가 형성되었고, 이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제주 해녀 문화의 보존 방식은 여타 무형문화재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국가나 지자체가 해녀를 단순히 전통을 전승하는 예능인으로 보지 않고, 실질적인 생계 주체로 인정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제주는 해녀 복지 정책, 의료 지원, 해녀 학교 운영, 해녀촌 활성화 등 다방면에서 ‘생활 중심’의 보존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해녀 문화 보존사업은 문화재청이나 제주특별자치도에 의해 전통예능 지원 방식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들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또한 제주 해녀 문화는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단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도 수백 명의 해녀가 실제 물질을 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이 해녀학교, 관광 해설, 지역 축제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무형문화유산의 일상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주 해녀 문화는 생업, 공동체, 신앙,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되어 역동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청 수산제: 전시성과 재현 중심의 의례형 보존 방식
충청권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산제(受山祭)**는 바다와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주민들이 해마다 열어온 의례로서,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 형태의 무형문화재입니다. 수산제는 보령, 태안, 서산 등 충청남도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전승되며, 지역 어민 공동체의 전통 신앙이 반영된 중요한 민속 행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다수의 수산제가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정기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충청 수산제의 보존 방식은 의례의 원형을 기록하고, 이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행사 준비는 보존회가 주도하며, 제물 준비, 축문 작성, 제의 절차 등이 엄격한 고증을 거쳐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형식 중심의 재현은 무형문화재의 원형 보존 측면에서는 효과적이나,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실제로 수산제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주체가 일반 어민보다는 문화재 관계자, 지자체 행정 담당자, 보존회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생활 속 전통보다는 ‘행사화된 전통’이라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현대의 수산제는 어업 환경의 변화, 종교 관념의 희석, 공동체 구조의 약화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필요성이 낮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 결과 수산제는 지역 축제의 일부로 편입되거나, 전통 행사로서 관광 자원화된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통해 외부인에게 지역 문화를 소개하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실질적 의미나 공동체적 참여는 줄어들고 있어, 전통의 내면적 지속성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일상 속 유산이냐, 의례적 재현이냐의 갈림길
제주 해녀 문화와 충청 수산제는 모두 해양을 중심으로 발달한 한국 전통문화의 산물이지만, 그 보존 방식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해녀 문화는 생업과 공동체 활동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국가와 지역 사회가 해녀 개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보존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력 있는 전통문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반면 수산제는 전통 의례로서의 형식을 엄격히 지켜가고 있으나, 생활과는 분리된 일회성 행사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으며, 형식적 재현에 그치고 있다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이 두 무형문화재의 사례는 오늘날 무형유산 보존에 있어 생활 밀착형 보존 방식의 중요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단순한 기록과 고증만으로는 전통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생활 문화와 연결되고, 지역민 스스로가 그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존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향후 수산제 역시 주민 주도형 참여 모델로 전환하거나, 현대 어촌 사회와의 연결점을 찾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제주 해녀 문화는 그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해녀 수 감소나 고령화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보완이 병행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