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궁시장 vs 예천 궁시장,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
활을 만드는 장인의 손길, 궁시장(弓矢匠)의 전통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중요하게 여겨왔으며,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를 넘어 정신 수양과 예절, 호국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궁시장은 단순한 장인이 아닌, 정교한 수공예 기술과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기능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현재 궁시장 기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각 지역에서는 궁시장의 기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무형문화재 보존과 전승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기도 남양주와 경상북도 예천은 대표적인 궁시 제작의 거점으로, 오랜 세월 활과 화살을 제작하며 지역의 궁도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두 지역은 궁시장의 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지역 차이를 넘어서 무형문화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향으로 지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남양주와 예천 궁시장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이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가 어떤 문화적 배경과 정책적 구조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가 지역성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얼마나 다양하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보존 방식의 방향성을 함께 알아가 보고자 합니다.
남양주 궁시장: 전통의 정교함을 기록과 교육으로 계승하는 체계형 보존
남양주는 조선시대 궁도장이 있던 지역이자, 왕실 활쏘기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궁시 제작 기술이 정제되고 형식화된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기능보유자가 활동하며 그 기술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남양주의 보존 방식은 정밀한 제작 기술을 문서화하고 교육 체계로 전환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국립무형유산원 및 경기도 무형문화재 전수관과 협력하며, 궁시 제작 과정 전반을 아카이빙하고 영상 자료화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전통문화학교, 국악고등학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 행사 등도 운영되고 있어, 젊은 세대와 일반 대중에게 활 제작의 미학과 정교함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남양주 궁시장은 ‘왕실 활’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전통 도면과 재료 비율까지 철저히 계승하고 있으며, 이는 궁시의 외형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까지 함께 전수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3D 스캔 기술과 VR 체험 콘텐츠를 도입해, 궁시장의 기술을 디지털화하여 교육과 전시, 체험 콘텐츠로 확장하는 시도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은 기록성과 교육성, 그리고 현대 기술의 융합을 통해 무형문화재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술 중심 보존이 현장성과 실전성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활 제작이라는 고도의 수공예 기술이 여전히 기능자 개인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기술임을 감안할 때, 체계화된 교육 외에도 실제 제작 현장에서의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천 궁시장: 지역 공동체 중심의 실전 전승과 문화 축제형 보존 방식
경북 예천은 ‘활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로 궁도 문화가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지역입니다. 예천의 궁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내려온 활 제작 명가들이 많으며, 현재도 예천군을 중심으로 전통 궁시장이 활동 중이고, 궁시 관련 무형문화재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별도 지정되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전승 관리되고 있습니다. 예천의 보존 방식은 기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한 ‘전통 제작 현장 중심의 계승’ 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예천에서는 궁시장이 직접 운영하는 공방을 통해 현장 전수 방식이 이뤄지며, 활쏘기 대회나 전통 무예 행사와 연계하여 활 제작 과정을 대중에게 시연하는 방식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예천 세계 활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에 그치지 않고, 궁도 시연, 활 만들기 체험, 전통 궁시 공예 전시 등 무형문화재 체험형 콘텐츠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천은 전통 활 문화를 관광과 결합한 실천형 무형문화재 보존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전통 계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예천은 지역 중학교 및 고등학교와 연계한 ‘청소년 전통 활 체험 행사’을 지속 운영하고 있어, 전통문화에 대한 조기 교육과 지역 정체성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천의 보존 방식은 상대적으로 기술 문서화나 정형화된 전수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기능보유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 전수 방식은 한편으론 생생함을 주지만, 기술 보편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방식의 공존이 전통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남양주와 예천의 궁시장 보존 방식은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각의 지역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여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가치 있는 모델입니다. 남양주는 제도화된 기록 중심의 교육적 접근을 통해 궁시장의 정교한 기술과 철학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있으며, 예천은 생활 속 활 문화와 지역 축제를 통해 공동체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의 보존 전략은 상호 보완될 수 있습니다. 남양주는 예천의 체험 중심 모델을 도입해 실전성을 강화할 수 있으며, 예천은 남양주처럼 기술 아카이빙과 정형화된 교육 체계를 보완하여 전통 궁시 제작 기술의 객관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보존은 단지 과거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창의적 문화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남양주와 예천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전통문화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해 나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두 지역의 보존 방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궁시장이라는 소중한 무형문화재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