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는 지역의 기억과 정체성을 품은 문화의 원형입니다
설화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구전되어 온 이야기로, 지역의 자연환경, 역사, 인간관계, 신앙 등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집단 기억의 보고입니다. 무형문화재로서의 설화는 문서로 기록된 고전문학과 달리 말과 몸을 통해 전승되어 온 생동하는 문화 자산이며, 구술자와 청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가 창출된다는 점에서 더 큰 사회적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 문화가 급속히 확산하는 시대에는, 지역 설화를 단지 구술 형태로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로 변환하여 새로운 세대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작업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설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제작과 활용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강원도와 경상북도는 고유의 설화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콘텐츠화하여 지역 문화 브랜드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설화를 생태관광·문학·애니메이션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고, 경북은 설화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시, 체험형 박물관, 지역 관광 콘텐츠로 전환하는 모델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강원도와 경북의 지역 설화 보존 방식과 콘텐츠화 전략을 중심으로, 무형문화재로서 설화의 가치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비교 분석하겠습니다.
강원도: 생태문화 연계형 설화 콘텐츠화와 체험 기반 전승
강원도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깊은 산악지형 속에서 생겨난 다채로운 설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설화와 생태’의 결합을 통해 지역 문화관광 자원으로 전환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전설’, 인제의 ‘설악산 호랑이 설화’, 영월의 ‘단종 설화’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단순히 구술 자료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현지 체험 행사, 관광코스, 공연예술 콘텐츠로 전환되어 지역 경제와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도 차원에서 ‘설화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인터뷰, 영상 콘텐츠, 디지털 지도와 연동된 스토리텔링 플랫폼 등을 통해 설화를 기록하고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평창군은 ‘오대산 설화마을’을 조성하여 설화와 산림 치유, 생태체험을 융합한 관광 모델을 개발하고 있고, 매년 ‘설화 캠프’와 ‘전통 이야기 마당극’ 등을 개최하여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설화를 놀이와 공연으로 체득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원도는 설화의 현대적 감성을 반영하기 위해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그림책, 짧은 애니메이션, 웹툰 시리즈 제작에도 투자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설화에 기반한 브랜드 상품(예: 호랑이 캐릭터 굿즈, 설화차 세트, 전설 음식 체험 메뉴 등)을 개발하여 설화 콘텐츠의 상업적 활용도 함께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콘텐츠화 작업은 문화적 깊이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며, 전통 설화의 구조와 상징성에 대한 해석 없이 지나치게 소비 중심으로 흐를 위험성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역사 중심 설화의 디지털 기록화와 박물관 형 전시 콘텐츠화
경상북도는 신라와 고려의 역사를 품은 지역으로, 왕실 중심의 설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전설, 마을 단위의 시조 설화 등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주에는 ‘문무대왕 설화’와 ‘황룡사 아홉 용 이야기’, 안동에는 ‘이 씨 삼 형제 설화’, 청도에는 ‘각북면 기우제 설화’ 등 역사적 인물과 지형지물을 중심으로 한 중층적 설화 구조가 특징입니다.
경북의 설화 보존 전략은 디지털화와 자료 보관, 박물관 기반 콘텐츠 제작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무형유산 전자지도’, ‘설화 낭독 오디오북’, ‘지역 유래 애니메이션’ 등의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안동시는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지역 설화 500여 건을 디지털 도서관과 연동된 설화 포털 시스템으로 구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 대상 교육자료, 영상 강의, AR 스토리북 등 융합형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주는 경북도와 협력해 ‘설화 중심의 역사 체험형 박물관’을 조성하여, 어린이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디지털 체험 콘텐츠(예: 무덤 탈출 설화 게임, 가상 신화 제작기 등)를 통해 지역 설화를 체득하는 프로그램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경북의 방식은 학술성과 역사성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설화의 현대적 유통 구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문화재청과 협업한 ‘설화 소재 전통문화 디자인 공모전’, ‘설화 기반 관광 해설 경진대회’ 등은 설화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실증하는 창의적 사례로 손꼽힙니다. 다만 디지털 중심 보존은 현장성과 공동체 감성, 즉 이야기의 구술성과 살아 있는 전달력을 일부 약화할 수 있으며, 콘텐츠화 과정에서 전통 문맥과 상징 체계가 왜곡될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동체 구술 기반과 디지털 기록 기반의 상호보완 필요성
강원도와 경북은 모두 지역 설화를 무형문화재로 인식하고 보존하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그 접근 방식과 콘텐츠화 전략은 확연히 다릅니다. 강원도는 설화를 지역 주민의 삶과 생태, 정서에 연결해 현장 중심의 체험 콘텐츠와 관광 자원화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경북은 설화를 역사와 교육의 관점에서 디지털 기록화와 전시 중심 콘텐츠로 전환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두 방식은 각각 실천성과 정통성을 대표하며, 지역의 문화 지형에 따른 자연스러운 전략 차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지역 설화의 무형문화재 보존은 이 두 방향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모델로 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원도의 실천형 접근은 구술 문화의 생명력을 지켜주지만, 설화의 지속적 전승과 전국적 확산을 위해서는 경북처럼 체계적 자료 보관과 매체 활용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경북의 디지털 기반 보존도 강원도처럼 지역민의 감성과 경험, 이야기 공간과의 물리적 접촉을 강화함으로써 설화의 인간적 의미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설화는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듣고 기억하고 다시 전하는 가에 따라 진정한 문화가 됩니다. 강원도와 경북의 사례는 설화가 단지 옛이야기가 아닌 지역과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적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향후 무형문화재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 음식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남도 vs 북부 지역의 접근 전략 (0) | 2025.07.06 |
---|---|
세대 간 전승 중심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전주와 제주의 접근법 (0) | 2025.07.05 |
전통 의례 문화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비교: 성균관과 향교 사례 (0) | 2025.07.05 |
농악 전승 사례를 통해 본 평택농악 vs 강릉농악의 보존 방식 비교 (0) | 2025.07.04 |
도자기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이천과 부안의 정책적 차이 (0) | 202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