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노래, 두 지역의 전승 방식
강강술래는 오랜 세월을 넘어 여성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온 집단 원무(圓舞)의 형식과 민요적 요소가 결합한 대표적 전통 민속놀이입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원형 춤의 구성과 강강술래 소리는 단순한 놀이나 노래를 넘어, 공동체의 삶과 감정,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반영된 상징적 문화유산입니다. 이 전통은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서 강하게 뿌리내려 왔으며, 그중에서도 해남과 고흥은 강강술래가 각각의 방식으로 깊게 뿌리내린 두 대표 지역입니다.
같은 이름의 무형문화재지만, 해남과 고흥에서의 강강술래는 보존의 방식과 문화적 접근, 지역 주민과의 연계 구조에서 차별성을 갖고 전개되고 있습니다. 해남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며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고, 고흥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등록되어 보다 공동체 참여와 마을 전통에 기반한 보존 전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지역 강강술래의 전승 구조와 보존 전략을 비교하고, 각각의 방식이 지닌 문화적 의미와 과제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전통 민속이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해남 강강술래: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기반의 체계적 보존 방식
해남 강강술래는 전통적으로 추석 전후로 해 질 무렵부터 달밤에 여성들이 원을 그리며 부르던 놀이형 노래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강강술래는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무형문화재로서의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보유자 제도, 전수자 교육, 문화재청 예산 지원 등을 통해 전문적인 전승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해남군은 지역 축제와 교육 프로그램, 각급 학교와의 연계를 통해 강강술래의 대중화와 교육화 전략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해남군 강강술래보존회는 연간 수차례에 걸쳐 공개 시연과 정기 공연을 개최하며, 보유자와 전수 조교, 이수자가 정식 전통에 따른 춤사위와 노랫말을 교육받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문화재청과 연계한 디지털 기록화 작업도 진행되어 왔으며, 강강술래의 각 동작과 가락을 고해상도 영상, 음원, 자막 등으로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강강술래의 예술적, 민속적 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전통을 ‘정형화된 문화’로서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통이 형식적으로만 보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보호는 정통성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실제 주민들의 참여율이나 일상 속 실천성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공연 중심 보존은 교육과 기록 면에서는 강하지만, 공동체 놀이로서의 강강술래 본연의 성격은 희미해질 수 있다는 한계를 내포합니다.
고흥 강강술래: 생활 속 전통의 실천과 공동체 기반 보존 전략
고흥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해남보다 규모는 작지만 실제 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전통 생활 속에서 유지되어 온 민속놀이의 본연에 더 가까운 형태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고흥은 해안가 마을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강강술래를 전승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특정 시기나 지역 축제에서 주민 주도의 실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흥의 보존 방식은 형식화된 국가 제도보다는 마을 단위의 자발적 문화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고흥군 문화원과 지역 여성회가 중심이 되어 매년 마을 단위의 강강술래 경연대회, 생활예술단 활동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함께 돌고 부르며 배우는 강강술래 교실’ 같은 체험형 교육도 지역 초등학교와 연계하여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강강술래가 지역 여성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연결하는 문화로서 단절 없이 실천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고흥의 방식은 기록이나 공연 중심이 아닌 체험과 실천 중심이라는 점에서, 보다 생활 속에 스며든 전승 구조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외부 홍보나 학술적 분석, 체계적 기록화 측면에서는 미흡한 점도 있습니다. 예산 규모가 작고, 전통문화 전문가의 개입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문화재로서의 가치 평가나 국가적 전파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그런데도 고흥 강강술래는 마을 공동체의 실제 감성과 감각이 담긴 살아 있는 무형문화재로서, 전통 보존의 또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도화된 보존과 생활 중심 전승의 상호 보완 가능성
해남 강강술래와 고흥 강강술래는 보존 방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해남은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서의 정통성, 체계적 교육 시스템, 기록 중심 보존 구조를 갖추었지만, 고흥은 지역 공동체의 자율적 실천, 생활문화와의 밀접한 연계, 감성 중심의 전통 계승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 두 모델은 어느 하나가 우월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전통 보존은 예술성과 실천성, 기록과 감정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한 복합적 문화 행위입니다.
해남은 고흥처럼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고흥은 해남처럼 기록과 학술 기반을 갖춘 체계적 보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무형문화재의 공공적 가치를 더 넓게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강술래는 춤의 기술이나 노래의 가락보다, 함께 원을 그리며 웃고 노래하던 공동체의 감정이 살아 있느냐가 보존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강강술래는 누군가의 노래와 함께 둥근 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해남과 고흥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줄기들은 결국 ‘전통을 지켜가려는 마음’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무형문화재 보존은 이 두 방식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양주 전통 줄타기와 밀양 줄타기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차이 (0) | 2025.07.13 |
---|---|
경기 휘모리장단과 충북 풍물 장단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비교 (0) | 2025.07.12 |
전주 가야금산조와 부산 가야금산조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분석 (0) | 2025.07.12 |
전라도와 충청도의 전통 무속신앙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비교 (0) | 2025.07.11 |
안성 남사당놀이와 의정부 웃다리농악의 무형문화재 보존 방식 비교 (0) | 2025.07.11 |